송명희 시인의 ‘나’라는 아름다운 곡이 있습니다.
뇌성마비인 그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남이 가진 거 다 없어도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여러분들 마음 속에 돌덩이들이 있습니까?
중국의 유명한 신학자 ‘워치만 리’가 설파하기를 물 속에 있는 바위는
물이 많아지면 넘어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문제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할 때 넘어갈 수 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바위를 치워달라고만 기도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바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게 주신 분복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현재를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인생을 바로 사는
비결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도 하나님의 큰 권능이지만
사실 지옥 갈 나를 천당 보내는 것이 더 큰 하나님의 권능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은 가장 실제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지당한 말씀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한테는 이렇게 잘 설명하다가도 나의 문제로 오면 당황하며 거부합니다.
장례식에 가서도 어디까지나 남의 장례식만 생각했지 자기 장례식 날은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남이 죽는 것을 보고는 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을 왜 못합니까?
죽음이 내 문제일 수도 있음을 부인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마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여러분,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쓸데없이 오래 살겠다거나 계속 젊어지겠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저도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서 살라고 한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생의 종말이 있어서 끝을 낸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끝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일을 완성하고 난 뒤에 끝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그 시간이 곧 끝나는 시간이요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완성 중에 완성의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어서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우리들에게 유익하므로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그러므로 우리의 끝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더 살다가 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올 때는 순서대로 왔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무 도시에나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해서 이익을 보리라고 계획하고 있는 그 발상이 참으로 어리석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같은 존재인데 어떻게 마음대로 아무 도시에나 가서 일 년 동안 돈벌어 오겠다는 그런 허튼 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넣고 ‘창고를 크게 늘려 오랫동안 먹고 마시며 즐기자’라고 말했을 때에 ‘이 사람아, 오늘 밤에 내가 자네 생명을 취한다면 자네 소유가 누구 것이 되겠는가?’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수고는 내가 했어도 결국은 하나님이 기회와 능력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15절 말씀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생각한 방법대로 결론이 나지를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말론적인 윤리관을 배우고, 세워야 합니다.
학생들 중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시험 때라고 특별나게 공부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자기 계획대로 열심히 하니 그 실력으로 시험을 봅니다.
그러므로 언제 시험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지를 않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죽음의 그 날이 언제와도 상관없이 평소대로 맞이할 수 있도록 종말론족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 마르틴 루터.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윤리관입니다.
또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그런 망상을 가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끝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죽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의 윤리로 살아갈 것입니다.
사실 주일 성수하는 것도 일종의 죽는 연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만 되면 모든 것을 전부 중단(all stop)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차피 부르시면 다 중단하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주일 지키는 것이 세상 일을 중단하는 훈련이니,
죽는 연습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지식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연기합니다.
순간순간,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내일로, 내년으로 미루는 통에 기회는 다 지나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그만 날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살인만이 죄가 아니라 게으른 것도 죄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책망을 받았습니까?
그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도둑질한 사실이 없습니다.
단지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내놓았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무섭게
책망을 받습니다. 여러분, 내게 주신 은사를 최선을 다해서 써야 합니다.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여러분,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가능하면 남이 할 일도 내가 하시기 바랍니다. 몇 십년 전에 스키장에 갔다가 재벌이란 대부분 그렇지만 아주 거만한.
스키를 남이 신겨줘요. 당연하다는 듯한 그 사람의 태도.
그 후 그 재벌은 남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걸어 가는. 균형이 안 잡혀
내가 할 일 남에게 맡겨 버릇하다가 이런 장애자가 된 것입니다.
잠언 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그런고로 나는 집에 있을 것이고, 잠을 잘 것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자전거를 배우다가 무릎 안까진 사람 있습니까?
자동차 운전 배우면서 접촉사고 한 번도 내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작자 미상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서 시가 주는 그 의미를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밝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에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회개도 겸손도 봉사도 선행도 충성도 다 기회가 있습니다.
지나가면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하지 못하고, 진실하려고 해도 진실하지 못합니다. 겸손하고 싶고 충성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종말이 언제 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종말은 옵니다.
그러므로 항상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항상 끝내는 마음으로 일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느끼면서 나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을
종말론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